Linggo, Marso 6, 2011

‘금값’이 된 金값… 결혼시즌임에도 찬바람만 ‘쌩쌩’

[SPECIAL REPORT Ⅲ]2010 가을 골드마켓 보고서
[르포] 종로일대 금시장에 가다

금값이 그야말로 ‘금값’이다. 금 시세가 연일 오르고 있는 요즘, 금반지, 금목걸이 등 실제 금제품들이 거래되는 시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국내 최대의 금 유통시장인 서울 종로 일대를 들여다봤다.

 “올봄에 비해서는 좀 나은데요, 금값이 많이 올라서 힘들죠 뭐.” 지난 9월9일 오후, 서울 종로에서 7년째 귀금속 도매상을 하고 있는 염순영씨는 대뜸 힘들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귀금속 시장의 최대 승부처는 결혼 예물 시장이다. 헌데 올 봄에는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결혼을 미룬 청춘남녀들이 많아서 장사가 엉망이었다고 한다. 못 견디고 가게를 접은 상인들도 꽤 있었을 정도였다고. 그나마 가을이 되면서 미뤘던 결혼을 하려는 예비부부들이 늘었는지 예물을 사려는 이들이 종로를 찾는 분위기라고 한다. 

예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취향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고 했다. 예전에는 결혼 예물을 준비할 때 순금,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에메랄드 등 종류별로 3~5세트(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를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새는 한 세트만 하거나 커플링만 주고받는 등 간소화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불경기 탓도 있고, 집값에 보태기도 하겠고, 무엇보다 금값이 너무 올라 부담스러운 거죠.”

자고 일어나면 올라있는 금값은 일반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거래상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

“비싸다고 한동안 주문을 안 하던 소매상들이 얼마 전부터 물건을 들여놓기 시작했어요. 값이 쌀 때 미리 사놨던 금제품 재고가 이제는 바닥난 모양이에요.”


종로의 귀금속 도매상가는 금값 급등의 직격탄을 맞았다.
금은 장신구의 재료이자, 가치가 오르내리는 자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금 거래상들은 금값이 쌀 때 제품을 들여놓고, 비쌀 때는 쌀 때 사놨던 재고를 푼다. 금값이 오르면 조정을 받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금값이 쉼 없이 치솟으면서 이 같은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가을 들어 종로 귀금속 시장의 경기가 조금 풀린 것은 소비자들에게 빈 매대를 보여줄 수 없었던 소매상들이 지갑을 연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비싼 값으로 새 물건을 들여놓을 형편이 못되는 소매상들은 아예 시제품 구매를 포기하고 빌려가기도 한다.

“원래 소매상들은 종로의 도매상에서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제품들을 사다가 소비자들한테 팔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소매상들이 물건을 구입하지 않고 약간의 임대료를 내고 빌려가요. 소매점에 진열을 해놨다가 소비자들이 찾는 제품들만 나중에 주문하고, 일정 기간 지나면 빌렸던 제품을 다시 반납하는 거죠. 시장이 이상해졌어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금값은 주얼리 생산 공장들에도 역시 부담이 되고 있었다. 종로에서 귀금속 관련 사업을 해온 지 20년도 넘는다는 주얼리 생산·유통업체 파퓰리언의 홍현기 사장도 “금값이 많이 올라 원재료비 부담이 높아져 힘들다”고 했다.

9월부터 시작되는 웨딩 시즌에 맞추려면 공장에서는 8월부터 물건을 출하해야 한다.

그래서 금제품 공장은 8월부터가 성수기인데, 핵심 재료인 금값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주문 물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100~200개가량의 제품을 생산하거든요. 그러면 금이 하루에 1125~1500g(300~400돈) 정도 필요해요. 7000만원어치쯤 되죠. 만든 제품들은 3~4일 지나서 유통시장에 나가요. 이 기간에 자금 회전을 잘 하는 게 관건이죠.”


홍현기 사장은 “종로의 귀금속 공장들의 규모가 갈수록 영세해지고 있다”고 했다. 큰 공장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으면 그 공장에 다니던 이들이 나와 소규모 공장을 차리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파퓰리언은 귀금속 디자인을 하는 홍현기 사장을 포함해 9명이 일한다. 단출하다고 생각했지만 웬걸, 종로에서는 ‘대형 공장’이란다.

“종로 일대의 귀금속 공장은 700여 곳쯤 되는데, 이 가운데 500여 곳은 한두 명이 일하거든요. 귀금속 기술을 가진 1인 기업 사장 여럿이 공장 하나를 빌려서 함께 일하는 곳도 많아요.”

오르는 금값의 유탄은 귀금속 장인들에게도 떨어지고 있었다. 오른 금값의 영향을 완제품에 최소한으로 반영하느라 장인들의 인건비가 수년째 제자리라는 것이다. 오른 금값에 상승한 인건비까지 제품가격에 반영하게 되면 소비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아버릴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란다.

“쓰던 금 현금으로 바꿔드려요”

“이거 얼마나 받을 수 있어요?” “어디 한번 볼까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쇼핑 나온 주부가 가방에서 목걸이, 귀걸이, 반지 등을 한 움큼 꺼낸다. 한국골드뱅크 강동점의 신미영 실장이 제품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무게를 달아본다. 이곳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할인마트 홈플러스 강동점에 입점해있는 금 매입 전문회사 한국골드뱅크 매장. 신 실장은 익숙한 솜씨로 값을 계산했다. 이 회사의 9월9일 금 매입 시세는 3.75g(1돈)당 17만3000원.

그는 주부로부터 신분증을 받아 복사를 하고, 서명도 받았다. 소비자들이 쓰던 귀금속을 사들이다 보면 가끔 장물(도난당한 제품)이 끼어들기도 해 매입할 때 이렇게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쓰던 금붙이를 가져다 파는 걸까? 형편이 기울어 현금이 필요한 이들일까? 

“생활고로 현금이 필요해서 파는 사람들은 별로 없어요. 한참 쓰다 보니 싫증나서 가져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요즘 금값이 비싸져서인지 주부들이 쓰던 주얼리나 아기 돌 반지를 들고 오는 분들이 많아요.”

신 실장은 “하루에 문의하는 사람들이 20여 명, 귀금속 제품들을 갖고 와서 현금으로 바꾸어 가는 이들이 10여 명”이라고 전했다. 환매가격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단다. 작게는 몇 천원부터 크게는 몇 백만원어치도 들고 온다고. 금, 은, 보석 등을 모두 매입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99%가 금제품을 가져온다고 한다.

조그만 책상 2개를 놓고 하는 자그마한 매대지만 거래되는 금액이 상당하다. 하루에 수백만원어치씩, 한 달이면 수천만원이 오간다. 한국골드뱅크는 현재 할인마트 30여 곳에 매장을 두고 개인들에게 금제품을 매입하고 있다. 올해 안에 매장 수를 100여 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집집마다 장롱 속에서 잠자고 있는 금을 사들여 다시 금제품이나 산업용 자원으로 쓸 수 있도록 정련업체에 되판다. ‘도심 속 금채굴업’을 하는 셈이다.

한국골드뱅크의 배효석 사장은 “국내에서는 귀금속, 시계 등 예물산업을 사치업으로 간주해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데, 금은 ‘자원’이자 ‘자산’이라는 점에서 특별소비세 부
과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Tip | 금시장 현황] 금 현물시장 규모 15조원대 … 세원 노출된 시장은 20% 불과

▷▶▷ 종로의 귀금속 상가 매장 곳곳에는 ‘14K, 18K 금 매입’처럼 금을 산다는 문구를 적은 종이를 붙여놓은 곳이 많다. 소비자들이 구매해간 금목걸이, 금반지 등의 금을 ‘고금(古金)’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중고 금’이란 얘기다. 귀금속 매장들이 매입한다고 하는 금은 바로 이런 고금이다.

금 현물을 거래할 때는 세금이 붙는다.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소비세가 붙는다. 그러다 보니 시중의 금 현물 시장에서는 세금 부담을 피하려고 물밑에서 거래되는 금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종로의 금시장에서 대략 추산하는 금 현물시장 규모는 무려 15조원대. 하지만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며 거래해 세원으로 노출된 시장은 이 가운데 약 20%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정도도 많이 양성화된 것이라고. 과거에는 세금으로 노출된 시장 규모가 겨우 3~4%에 그쳤다고 한다.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국내 금시장 상황처럼 국내 금 시세는 통계로도 잡히지 않는다. 귀금속 매장에서 사고파는 기준이 되는 금 시세는 그야말로 종로의 큰 도매상들이 ‘부르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증권거래소, 언론, 금융기관 등에서 언급되는 금 시세는 미국과 유럽 상품거래소의 국제 시세다. 9월1일부터 한국거래소에서 금 시세를 고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달러로 나온 국제 시세를 원으로 환산해 올리는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어둠 속에 숨어있던 금시장을 양성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금 거래 시 거래규모를 제대로 신고할 경우 신고액의 3/103(약 2.9%) 정도를 환급해주는 당근 정책을 내놨다.

이 같은 정부시책에 따라 정부 지정 금거래 전용 계좌(신한은행만 가능)를 통해 거래를 하고, 이를 통해 투명하게 드러난 거래액에 따라 환급받은 자금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금 매입 전문 회사들이 등장했다. 한국골드뱅크도 그런 회사 중 하나다. 금 매입 회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사들인 고금은 정련업체로 다시 판매되어 금괴(골드바)나 주얼리 제품의 원재료 금으로 다시 시장에 돌아오게 된다.

정부는 오는 2012년 1월부터 한국거래소(KRX) 안에 금거래소를 열 계획이다. 주식시장처럼 일정하게 규격화시킨 금을 거래하는 거래소다. 금거래소가 생기면 현재 수입상·제련업자 등 공급자에서 소비자까지 ‘도매상-중간상-소매상-소비자’ 등 3~4단계를 거쳐야 하는 금 유통구조가 ‘공급자-거래소-소비자’로 단순화 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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